장르를 거부한 조각가 로버트 그로스베너, 88세로 별세
60년간 미니멀리즘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한 거장

-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이자 장르를 거부한 조각가 로버트 그로스베너가 88세로 타계했다.
- •60년간 대형 추상 조각부터 사진, 콜라주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 •예술과 기능의 경계를 탐구하며 미니멀리즘의 경계를 확장한 그의 작품은 현대 조각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예술가
미국 조각계의 거장 로버트 그로스베너(Robert Grosvenor)가 9월 3일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968년부터 그의 작품을 대리해 온 폴라 쿠퍼 갤러리(Paula Cooper Gallery)가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그로스베너는 60년이 넘는 예술 활동 기간 동안 어떤 장르로도 분류되기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대형 추상 조각으로 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사진, 드로잉,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그러나 그 이상
1960년대 그로스베너는 미니멀리즘 운동의 핵심 인물로 주목받았다. 1966년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의 획기적인 전시 「Primary Structures」와 1968년 헤이그 시립미술관의 「Minimal Art」에 참여하며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솔 르윗(Sol LeWitt),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그는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산업 자재를 비정통적으로 활용하고, 공간 역학과 기능성 개념을 위트 있게 탐구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캔틸레버 강철 구조물부터 부서진 나무 빔, 바닥에 놓인 차량 외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다채로웠다.
미술 비평가 존 야우(John Yau)는 그로스베너의 2020년 작품—콘크리트 블록, 고무 라이닝, 고여 있는 물로 구성된 복잡한 조각—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구조는 단순하고 놀라울 정도로 경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관대하다. 그로스베너는 예술과 기능을 구분하는 선까지 걸어가면서도 결코 그 선을 넘거나 논평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며, 이런 능력을 가진 조각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유럽과 미국을 오간 예술 여정
1937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그로스베너는 로드아일랜드와 애리조나에서 성장했다. 10대 시절 유럽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며 고전 교육을 받았다. 디종의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 파리의 에콜 쉬페리외르 데 자르 데코라티프(Eco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이탈리아 페루지아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학창 시절 이브 클라인(Yves Klein),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 같은 실험적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2019년 브루클린 레일(Brooklyn Rail)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959년 미국으로 돌아와 6개월간 군 복무를 마친 뒤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폴라 쿠퍼가 운영하던 협동조합 형태의 파크 플레이스 갤러리(Park Place Gallery)와 쿠사마 야요이, 마크 디 수베로 등에게 초기 무대를 제공했던 그린 갤러리(Green Gallery) 멤버들과 친분을 쌓았다. 당시 자신의 작품을 "벽에서 떨어져 나온 회화"라고 표현했으며, 1962년부터 그룹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표작과 예술적 유산
폴라 쿠퍼 갤러리에 따르면, 그로스베너 본인은 1965년 선보인 「Transoxiana」를 자신의 커리어 시작점으로 여겼다. 길이 31피트(약 9.4미터)의 각진 캔틸레버 조각인 이 작품은 후에 「Primary Structures」전에 출품되어 미니멀리즘의 선구적 작품들과 나란히 전시됐다.
1965년작 「Topanga」는 애리조나 소노란 사막의 거대한 태양 망원경 사진을 보고 제작한 역동적인 기하학적 작품으로, 그의 공간 감각을 잘 보여준다. 1968~1970년 제작된 무제 백색 강철 구조물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태로 관객을 놀라게 했다.
그로스베너는 의도적으로 많은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설명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관객이 작품과 직접 대면하며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예술과 기능 사이의 경계인
그로스베너의 작품은 종종 관객을 당혹하게 만들었지만, 바로 그 불투명함과 건조한 위트가 그의 예술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는 예술과 기능성의 경계를 탐구하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감을 유지했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르의 정의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발전시킨 그로스베너는 현대 조각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역사적 맥락 속에 있으면서도, 그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댓글 (3)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정리한 기사네요.
거부한 관련 기사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정보네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주변에도 공유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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