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026년 탄소국경세 본격 시행…아시아 수출국 타격 우려 고조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주요 산업 대상, 한국·중국·인도 등 대응책 마련 분주
- •EU가 4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며 철강·알루미늄 등 6개 업종에 탄소 비용 부과
- •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아 수출국들이 최대 20% 추가 비용 부담 예상, WTO 제소 등 반발 움직임
- •미국·영국·캐나다도 유사 제도 도입 검토 중으로 2030년까지 글로벌 무역의 30%가 영향권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오늘부터 전면 시행
유럽연합(EU)이 4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본격 시행하면서 글로벌 무역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브뤼셀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3년 10월부터 시범 운영해온 CBAM이 오늘부터 완전한 형태로 작동한다"며 "기후변화 대응과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역사적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이 제도는 EU로 수입되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측정해 EU 역내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치다. 초기 단계에서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업종이 대상이며, 2030년까지 화학,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EU 기후정책 담당 집행위원 발레리아 노바크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참여하는 역내 기업들이 막대한 탄소 비용을 부담하는 동안, 환경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유입되는 불공정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EU 철강업계는 톤당 평균 80유로의 탄소 비용을 부담하는 반면, 일부 아시아 국가의 철강은 거의 비용 부담 없이 생산되고 있다.
한국·중국·인도, 수출 타격 불가피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국가는 한국, 중국, 인도, 터키 등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EU 철강 수출액은 연간 약 35억 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로, CBAM 시행으로 최대 15~20%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들은 이미 탄소 배출량 감축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EU 수준으로 맞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은 EU의 최대 철강 수입국으로, 연간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넘는다. 중국 철강업계는 석탄 기반 생산 비중이 높아 탄소 집약도가 EU 평균의 2배 이상이다. 베이징의 한 통상 전문가는 "CBAM은 사실상 중국 제품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무역 장벽"이라며 "WTO 제소를 포함한 다각적인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인도 정부도 즉각 반발했다. 인도 상공부는 성명을 통해 "선진국의 역사적 탄소 배출 책임은 외면한 채 개발도상국에 일방적인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기후 정의에 위배된다"며 "EU와의 양자 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는 EU에 연간 약 28억 달러 규모의 철강과 알루미늄을 수출하고 있다.
글로벌 기후 통상 질서 재편 신호탄
EU의 CBAM 시행은 단순한 무역 정책을 넘어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도 유사한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 중이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도 2027년부터 탄소집약적 수입품에 대한 조정 메커니즘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주요 선진국의 80% 이상이 탄소국경조정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글로벌 무역의 약 30%에 영향을 미치는 규모다. 세계무역기구(WTO)는 CBAM의 WTO 규정 합치성 여부를 놓고 법률 검토에 착수했으며, 올해 안에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린피스 EU 지부는 "CBAM이 탄소 누출을 막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EU 역내 배출 감축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기후위기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EU의 2025년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2% 감소에 그쳐 2030년 목표(1990년 대비 55% 감축) 달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기업, 대응 전략 수립 박차
한국 정부는 CBAM 대응을 위해 범부처 TF를 가동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5조원 규모의 녹색금융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EU와의 양자 협상을 통해 한국의 탄소배출권거래제(K-ETS)를 EU가 인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상용화해 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30%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다. 현대제철도 전기로 비중을 현재 25%에서 2030년 40%로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높이는 등 저탄소 생산체제 구축에 총 8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소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한 철강 2차 제품 제조업체 대표는 "대기업과 달리 우리는 탄소 배출량 측정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정부의 실질적인 기술·재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CBAM 대응을 위한 컨설팅과 인증 취득 비용의 50% 이상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CBAM을 위기가 아닌 산업 구조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CBAM을 계기로 한국 제조업이 친환경 고부가가치 구조로 재편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 분석] CBAM, 글로벌 무역·기후 정책의 분기점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본격 시행은 향후 10년간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수출국들의 반발과 WTO 제소 등 통상 마찰이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탄소 가격제 확산과 저탄소 기술 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탄소집약 산업의 비중이 높아 초기 충격이 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K-ETS를 운영하고 있고, 수소경제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정부와 기업이 CBAM을 산업 체질 개선의 촉매제로 활용한다면, 2030년경에는 오히려 EU 시장에서 '녹색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중소기업과 취약 업종에 대한 세심한 지원 정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또한 미국, 중국 등 주요국과의 기후 통상 협력 체계를 구축해 CBAM이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EU의 이번 조치는 결국 '탄소 없는 무역'이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댓글 (3)
우리나라 외교 전략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 문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추가 정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