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의 키트루다, 기적의 항암제가 '그들만의 약'이 된 방법
특허 요새와 로비, 비밀 계약으로 쌓은 310억 달러 매출…전 세계 암 환자는 접근 불가

- •머크의 항암제 키트루다는 2025년 317억 달러 매출로 회사 수익의 절반을 차지한다.
- •ICIJ 조사에 따르면 머크는 특허·로비·비밀계약으로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수년 지연시켰다.
- •전 세계 저소득국 암 환자들은 고가 구조로 인해 이 치료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 사진 한 장의 이면
2025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미국 주요 제약사 최고경영자(CEO) 아홉 명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 모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약가 인하 협약을 발표하며 "가격이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각 CEO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지지 발언을 이어갔다.
머크(Merck & Co.)의 로버트 M. 데이비스 회장 겸 CEO 차례가 됐을 때, 그는 트럼프의 약가 인하 목표에 "100% 지지"를 표명했다. 당뇨병 치료제와 심혈관 계열 약의 가격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약이 있었다. 바로 2025년 한 해에만 317억 달러(약 43조 원)의 매출을 올린 항암제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 브랜드명 키트루다(Keytruda)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심층 조사에 따르면, 머크는 키트루다의 처방량을 극대화하면서도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특허 전략, 로비, 비밀 계약이라는 삼중 방어막을 구축해왔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암 환자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복제 생물의약품) 접근 기회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왜 키트루다인가: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키트루다는 머크 전체 매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캐시카우(cash cow)'다. 면역 항암 치료제인 이 약은 폐암, 흑색종(melanoma), 자궁경부암 등 수십 종의 암 치료에 사용되며, 특정 환자군에서 기존 항암제 대비 월등한 생존율 향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접근성이다. 키트루다의 미국 내 연간 치료 비용은 환자당 수십만 달러에 달한다. 고소득 국가에서도 보험 적용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사실상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ICIJ 조사는 머크가 이 가격 구조를 의도적으로 유지해왔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드러냈다.
특허 요새: 장벽을 쌓는 방법
머크가 구축한 첫 번째 방어선은 특허다. 제약사들이 핵심 특허 만료 이후에도 제형, 투여 방법, 적응증(indication) 등에 추가 특허를 출원해 독점 기간을 연장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은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ICIJ 조사에 따르면 머크는 키트루다와 관련해 수십 건의 특허를 등록하거나 신청한 상태로, 이는 실질적인 바이오시밀러 경쟁을 수년간 지연시키는 효과를 낸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생물의약품과 동등한 효능을 지니면서 가격이 현저히 낮은 제품이다. 키트루다의 주요 특허는 2028년 전후로 만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머크의 추가 특허 전략이 실제 시장 진입을 2030년대까지 미룰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번째 방어선은 비밀 계약이다. 머크는 각국 정부, 병원, 보험사와의 가격 협상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계약 구조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가격 비교와 협상력 강화를 어렵게 만들어, 특히 협상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세 번째 방어선은 로비다. 복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머크는 미국 의회와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약가 규제 완화 및 특허 보호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미국 내 메디케어(Medicare) 약가 협상 대상 약품 목록에 키트루다가 포함되지 않도록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흐름은 언제부터: 면역항암제 시대와 '접근성의 역설'
면역 관문 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계열의 항암제 시대는 2011년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ristol Myers Squibb)의 이필리무맙(ipilimumab)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으로 본격화됐다. 2014년 머크의 키트루다와 BMS의 니볼루맙(nivolumab)이 잇따라 승인되며 면역항암제는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초기에는 기적의 약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말기 흑색종 환자의 장기 생존 사례가 보고됐고, 키트루다는 점차 적용 암종을 넓혀갔다. 머크는 키트루다를 '항암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며 수백 건의 임상시험을 진행, 처방 가능한 암 유형을 계속 확대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접근성의 역설'이 부각됐다. 약이 더 많은 암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수록, 그 약을 구하지 못하는 환자도 더 많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키트루다를 필수 의약품 목록에 등재했지만, 고가 구조는 그대로였다.
2022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로 메디케어의 일부 약가 협상이 가능해졌으나, 생물의약품은 소분자 의약품에 비해 협상 유예 기간이 길어 키트루다는 당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인도, 브라질 등 일부 국가는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를 활용해 저렴한 복제약 생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머크는 이에 법적·외교적으로 대응해왔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제약 산업 분석가들은 키트루다를 둘러싼 갈등이 향후 글로벌 제약 정책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 시기: 삼성바이오에피스, 포뮬러리(Formycon) 등 여러 제약사가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2026~2027년 임상 데이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머크의 특허 방어 소송에 따라 실제 시장 출시는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약가 투명성 압력 증대: 유럽연합(EU)과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약가 협상 결과 공개를 의무화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흐름이 제도화될 경우 머크의 비밀 계약 전략은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 정치적 압력: 트럼프 행정부가 약가 인하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규제 강도는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백악관 협약이 실질적 강제력이 없는 홍보성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초당적 압력이 지속된다면 생물의약품에 대한 가격 협상 유예 기간이 단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건 경제학자들은 키트루다 사례가 '혁신 보상'과 '접근성 보장'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구조적 충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신약 개발에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현실에서 특허 독점 기간은 투자 회수의 핵심 기제다. 그러나 생존과 직결된 치료제가 가격 장벽으로 인해 대다수 환자에게 닿지 못한다면, 의약품 혁신의 사회적 가치 자체가 훼손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갖는다.
ICIJ의 이번 조사는 머크가 이 균형점을 어떻게 조율해왔는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적의 항암제가 탄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 기적이 실제로 닿아야 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달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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