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 본격 시행...아시아 수출국 긴장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7개 품목 대상, 탄소배출 인증서 구매 의무화
- •EU가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하며,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에 대해 실제 비용 부과 시작
-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7개 품목이 1차 대상이며, 중국·인도 등 아시아 수출국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WTO 제소 검토 중
-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탄소배출 측정 산업 성장 예상되나, 개도국과 선진국 간 기술격차 심화 우려도 제기
3년 전환기 끝나고 전면 시행 단계 진입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2026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수출국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3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브뤼셀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3년 10월부터 3년간의 전환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올해부터는 수입업체들이 실질적으로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고 밝혔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측정하고, EU 역내 기업들이 부담하는 수준과 동일한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EU의 야심찬 기후정책인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의 핵심 축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환기간 동안에는 수입업체들이 탄소배출량만 보고하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서 배출권을 실제로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현재 EU ETS에서 탄소 1톤당 가격은 약 85유로(약 12만 5천원) 수준으로, 이는 수출기업들에게 상당한 추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7개 품목 1차 대상
CBAM의 1차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특정 화학제품 등 7개 품목이다. EU는 이들 품목이 탄소 집약도가 높고 '탄소누출(carbon leakage)'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탄소누출이란 엄격한 기후규제를 피해 기업들이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EU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EU로 수입되는 철강의 약 28%가 한국, 중국, 인도, 터키에서 생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EU 철강 수입의 12%를 차지하며 최대 공급국이지만, 석탄 기반 제철소 비중이 높아 탄소배출 강도가 EU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경우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이 EU 수출 비중이 높은데, 양사 모두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생산 공정 전환에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BAM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산 공정을 개선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며 "중소 협력업체들은 이러한 전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EU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U 집행위는 2030년까지 CBAM 적용 품목을 유기화학제품, 플라스틱, 암모니아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거의 모든 제조업 제품에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도국 "사실상 무역장벽" 반발...WTO 제소 가능성
개발도상국들은 CBAM이 기후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운 사실상의 무역장벽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도 상공부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선진국들이 수백 년간 탄소를 배출하며 경제를 발전시켜놓고, 이제 개도국의 발전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중국 상무부도 "CBAM은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위배되는 일방적 조치"라며 "필요시 WTO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은 CBAM의 WTO 합치성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WTO 규정은 회원국들이 '동종 상품(like products)'을 차별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EU는 CBAM이 수입품과 역내 생산품에 동일한 탄소가격을 적용하는 것이므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WTO 예외조항인 '환경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WTO에서 수년간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무역센터(ITC)의 한 연구원은 "CBAM은 기후변화와 무역이 충돌하는 최전선"이라며 "이 제도의 WTO 합치성을 판단하는 것은 21세기 무역법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U는 개도국들의 우려를 일부 수용해, 최빈개도국(LDC)에 대해서는 CBAM 적용을 2030년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또한 개도국들이 저탄소 생산 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글로벌 '탄소장벽' 시대 개막...각국 대응 분주
EU의 CBAM 본격 시행은 글로벌 무역 질서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도 유사한 탄소국경조정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며, 일부 전문가들은 2030년대에는 '탄소장벽'이 새로운 무역 규범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청정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며, 이는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 등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도 2027년부터 자체 CBAM을 시행할 계획이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이 탄소국경조정 제도를 도입하면, 개도국들은 주요 수출시장 접근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CBAM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 인증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중소기업들이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또한 EU와 '탄소배출 측정 방식 상호인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만약 한국의 배출량 측정 시스템이 EU에 인정받으면, 국내 기업들의 행정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CBAM이 역설적으로 글로벌 탄소감축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저탄소 생산 방식을 도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일부 대형 철강기업들은 전기로 전환과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EU 집행위 관계자는 "CBAM의 목적은 무역 제한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며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도국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AI 분석] 기후·무역 연계 시대의 본격 개막
EU CBAM의 전면 시행은 단순한 무역정책 변화를 넘어, 국제 경제질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향후 5년간 다음과 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다.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기업들은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생산기지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저탄소 공정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기술격차가 더욱 벌어질 위험이 있다.
둘째, 탄소배출 측정·인증 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제품별 탄소발자국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 AI를 활용한 배출량 예측 모델, 제3자 인증 서비스 등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의 스타트업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셋째, 국제통상 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CBAM의 WTO 합치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수년간 지속될 것이며, 일부 국가들은 보복관세나 수입제한 등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기후정책이 무역전쟁의 새로운 전선이 되는 셈이다.
넷째, 개도국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재정 여력이 있는 중진국들은 저탄소 전환에 투자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최빈국들은 기술과 자본 부족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더욱 주변화될 위험이 있다. EU의 기술·재정 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남북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탄소가격 국제 표준화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각국이 서로 다른 탄소가격 체계를 운영하면 무역 마찰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OECD나 G20 차원에서 최소 탄소가격이나 측정 방식 통일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실상 글로벌 탄소세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CBAM은 기후위기 대응과 경제성장, 국제 공정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이 제도가 진정한 기후행동의 촉매제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보호무역주의로 변질될지는 앞으로 EU와 국제사회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탄소중립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댓글 (4)
평화적 해결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네요.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같습니다.
외교 전문가의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평화적 해결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