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의 키트루다, 어떻게 세계 최고가를 유지하는가
특허 장벽부터 보험 거부까지, 암 환자들이 치료제를 못 받는 구조적 이유

- •ICIJ 조사보도, 머크가 특허 전략으로 키트루다 독점 유지 폭로.
- •고가 약값에 보험 거부까지 겹쳐 암 환자들이 법정 투쟁에 내몰림.
- •위조 키트루다 확산 등 약가 문제가 의료 위기로 번지고 있음.
세계 최고 매출 항암제, 그러나 닿지 않는 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는 수십만 명의 암 환자에게 생명줄로 불린다. 미국 제약사 머크(Merck)가 개발한 이 면역항암제는 폐암·피부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종에서 탁월한 효과를 입증했다. 그러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Cancer Calculus' 조사보도에 따르면, 이 기적의 신약은 전 세계 수많은 환자들에게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약값이 치료 접근 자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게 중요한가
키트루다의 문제는 단순히 비싼 약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태는 현대 제약 산업 구조의 핵심 모순을 드러낸다. 공공 연구비와 국가 보조를 통해 개발된 신약이 민간 기업의 특허 독점 아래 놓이면서,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접근조차 못하는 역설이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ICIJ가 여러 국가 기자들과 협력해 진행한 이번 조사는 머크가 키트루다의 고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파헤쳤다. 환자 가족들의 재정적 파탄, 보험사와의 법적 공방, 위조 약품 시장의 등장까지—약값 문제는 이미 의료 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사회적 위기로 번졌다.
특허 장벽: 경쟁을 막는 법적 울타리
머크가 키트루다의 고가를 지속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은 특허 전략이다. ICIJ 조사에 따르면, 머크는 키트루다 관련 특허를 수십 건 이상 출원해 바이오시밀러(복제 생물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수년간 지연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으로 불리는 이 수법은 약효 성분 자체가 아닌 제형, 투약 방법, 적응증 조합 등 주변 특허를 반복 출원해 사실상 독점 기간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방식이다.
인터랙티브 자료를 통해 공개된 ICIJ의 분석은 머크가 키트루다 특허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경쟁 약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한, 가격은 오직 머크의 결정에 달려 있다.
보험사의 거부, 법정에서 싸우는 환자들
약값만이 문제가 아니다. 비싼 보험료를 내고 있는 환자들조차 키트루다 투여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ICIJ 조사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의사가 처방한 키트루다 투약을 거부하거나 행정적 절차를 이유로 지연시켰다. '당신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약을 거부당하는 것'이라는 환자들의 증언이 보고서 곳곳에 담겼다.
일부 환자와 그 가족들은 보험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암과 싸우는 동시에 법정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은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를 상징한다.
위조약의 등장: 절박함이 만든 그늘
고가 약품이 낳은 또 다른 비극은 위조 키트루다의 확산이다. 정품에 접근하지 못한 환자들이 불법 유통 경로에서 약을 구하려다 위조품에 노출되는 사례가 보고됐다. 효과가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조 항암제의 확산은 가격 장벽이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직접적 생명 위협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역사적 맥락: 면역항암제 혁명과 약값의 역설
키트루다가 처음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14년이다.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라는 새로운 항암 패러다임을 연 이 약은 이후 적응증을 빠르게 확장하며 머크의 핵심 수익원이 됐다. 2023년 기준 연간 매출은 250억 달러를 돌파해 글로벌 의약품 매출 1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키트루다 개발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비롯한 공공 연구 기관의 기초 연구가 중요한 토대가 됐다는 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납세자 돈이 투입된 연구가 민간 기업의 독점 이익으로 귀결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은 오래됐지만, 제도적 변화는 더디다.
미국에서의 약가 협상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2022년 통과되면서 정부의 약가 협상력이 일부 강화됐다. 그러나 키트루다를 포함한 고가 신약들에 대한 실질적 가격 인하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이번 ICIJ 조사는 단순한 폭로를 넘어, 글로벌 의약품 접근성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정부는 필수 의약품 가격에 대한 국제적 기준 마련을 논의해 왔으나, 제약사들의 강력한 로비와 특허 보호 논리에 막혀 진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가 향후 수년 내 시장에 진입할 경우 가격 경쟁이 일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머크의 특허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견고하게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시점과 효과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포함한 중저소득 국가의 경우 건강보험 약가 협상에서 다국적 제약사와의 정보·협상력 격차가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ICIJ의 이번 보도가 각국 규제 당국과 의회에 약가 투명성 요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의약품을 '공공재'로 볼 것인가, '시장 상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철학 논쟁과 맞닿아 있다. 수십만 암 환자의 생사가 걸린 이 논쟁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는, 각국 사회가 의료와 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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