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의 키트루다, 1,212개 특허로 구축한 암 치료의 '돈의 장벽'
ICIJ 1년간 조사, 세계 최대 암 치료제가 이윤 추구로 환자 접근성 막는 구조 드러나

- •ICIJ, 1년 조사로 머크 키트루다의 특허 요새와 가격 담합 구조 공개.
- •53개국 1,212건 특허 출원으로 2042년까지 경쟁 차단 가능성 제기됨.
- •미국 연간 치료비 최대 20만 8,000달러, 환자 접근성 위기 심화.
1,630억 달러 매출, 그리고 닿지 못한 환자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47개 언론사와 공동으로 1년간 수행한 '캔서 칼큘러스(Cancer Calculus·암의 계산법)' 조사를 통해, 미국 제약사 머크(Merck & Co.)가 블록버스터 암 치료제 키트루다(Keytruda)의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유지하면서 경쟁 제네릭 약품의 시장 진입을 조직적으로 차단해 온 실태가 공개됐다. 이번 보고서는 27개국에서 1,018건의 공공 기록 요청을 통해 확보한 가격·특허·로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왜 이게 중요한가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스스로 공격하게 만드는 면역항암제(immunotherapy)다. 기존 화학요법이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무차별 공격하는 방식과 달리, 키트루다는 일부 암세포가 면역 체계를 우회하는 경로를 차단한다.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첫 승인 이후 현재 19개 암 종류에 적용되고 있으며, 300만 명 이상이 투여받았다.
문제는 이 혁신적 치료제가 가격 장벽으로 인해 수많은 환자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간 치료비 기준 미국에서는 최대 20만 8,000달러(약 3억 원), 독일에서는 약 8만 달러, 크로아티아에서는 11만 6,000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6만 5,000달러에 달한다. ICIJ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 불가리아·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들의 중간 소득자에게 부담이 특히 크며, 부유한 서유럽 일부 국가보다 실질 접근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 정부 예산도 압박을 받고 있다. 부유한 국가들조차 키트루다 비용 급증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이 약은 머크에 2014년 이후 약 1,630억 달러(약 238조 원)의 매출을 안겨줬다.
이 흐름은 언제부터?
키트루다의 역사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DA가 가장 악성도 높은 피부암인 흑색종(melanoma) 치료제로 처음 승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머크는 적응증을 빠르게 확대해 현재 19개 암종에 대한 승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선도적인 암 연구자들은 효과가 제한적인 적응증까지 무분별하게 확대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머크는 치밀한 특허 방어 전략을 실행했다. 관련 업계 보도에 따르면, 머크와 관련 제약사들은 53개 국가·지역·영토에서 최소 1,212건의 특허 출원을 제출해 키트루다 주변에 '특허 요새'를 구축했다. 원래 핵심 특허는 2028년 만료 예정이지만, 이 연속 특허 전략은 그 이후 14년, 즉 2042년까지 경쟁 바이오시밀러(생물학적 동등의약품)의 진입을 차단할 수 있다.
용량 전략도 논란의 대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폐암 환자의 투약 방식을 체중 기반 용량으로 전환할 경우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5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일부 암 연구자들은 머크가 권장하는 고용량이 임상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상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재무 구조도 주목된다. 머크는 이익을 스위스 등 낮은 세율 국가에 귀속시키는 방식을 활용했다. 202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머크는 미국에서 약 16억 달러의 법인세를 납부한 반면, 스위스를 포함한 해외에서는 약 45억 달러를 납부했다. 같은 기간 주주에게 지급된 배당금은 약 750억 달러, 자사주 매입에는 430억 달러가 투입됐다. 또한 머크는 미국 내 의사와 의료 전문가들에게 컨설팅 비용·출장비 등 키트루다 관련 명목으로 수천만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가 글로벌 의약품 가격 정책과 특허 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당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머크의 특허 요새가 유지되는 한, 저가 바이오시밀러의 진입은 2040년대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각국 보건 예산에 지속적인 압박 요인이 될 전망이다.
규제 당국과 국제기구의 움직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ICIJ의 조사가 27개국의 방대한 공공 데이터를 근거로 하고 있는 만큼, 복수 국가의 정책 당국이 가격 투명성 강화와 특허 제도 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WHO의 체중 기반 용량 권고가 정책화될 경우, 전 세계적인 의약품 비용 절감 효과가 현실화될 수 있다.
머크 측은 가격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머크의 수석 부사장 요한나 헤르만은 회사의 가격 정책을 방어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로버트 M.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캔서 칼큘러스 보고서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혁신의 결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댓글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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