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의 키트루다 가격 독점, 암 환자들을 가로막다
ICIJ 37개국 공동조사, 연간 5억원 넘는 치료비 뒤에 숨겨진 특허 요새 전략 폭로

- •ICIJ가 37개국 공동조사로 머크의 키트루다 고가 유지·경쟁 차단 전략을 폭로했다.
- •미국 기준 2년 치료비 약 5억 7천만원으로, 국가별 가격 격차는 최대 7배에 달한다.
- •2028년 특허 만료 전후 바이오시밀러 경쟁 진입 여부가 향후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고 매출 항암제의 두 얼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37개국 47개 언론사와 함께 1년에 걸쳐 진행한 'Cancer Calculus(암 계산법)' 조사 결과를 2026년 4월 13일 공개했다. 핵심은 하나다. 미국 제약사 머크(Merck & Co.)가 블록버스터 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의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유지하면서 경쟁을 차단해왔다는 것이다.
키트루다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항암제(PD-1 억제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4년 진행성 흑색종 치료제로 최초 승인한 뒤 현재까지 총 19개 암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2025년 한 해 매출만 317억 달러(약 44조원)로, 머크 전체 매출의 절반에 육박한다.
왜 중요한가: 가격 격차가 곧 생명의 격차
ICIJ 조사에서 드러난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국가별 가격 차이다. 키트루다 100mg 단일 바이알(vial) 기준 목록 가격은 인도네시아에서 약 850달러인 반면 미국에서는 6,015달러에 달한다. 7배에 가까운 격차다.
통상 3주마다 200mg, 또는 6주마다 400mg을 정맥 투여하며 최대 2년간 치료가 지속된다. 미국 목록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2년 치료 총비용은 약 41만 6,000달러(약 5억 7,000만원)에 이른다. 보험사들이 2년 이후 급여를 중단하는 경우도 많아, 치료가 연장될 경우 환자 부담은 더욱 커진다.
머크는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제약사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약값 인하를 촉구했을 때도 키트루다에 대한 가격 인하를 약속하지 않았다. 머크 최고경영자 로버트 M. 데이비스(Robert M. Davis)도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연간 317억 달러 매출을 올리는 키트루다는 논의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이는 단순한 기업 이익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암 환자들이 같은 약을 두고 어떤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치료 접근성이 달라지는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준다. 복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저소득 국가에서는 아예 급여 등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 흐름은 언제부터: 특허 요새의 축조
키트루다의 가격 문제는 2014년 FDA 승인 직후부터 예고됐다. 당시 머크는 기존 화학항암제 대비 월등한 효과를 내세워 고가 정책을 정당화했다. 이후 머크가 취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특허 요새(patent fortress)' 구축이다. ICIJ 분석에 따르면 머크는 키트루다의 특허망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후발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복제 생물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막아왔다. 제조 공정, 투약 방식, 새로운 적응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특허를 촘촘히 쌓는 방식이다. 이는 머크만의 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가 고가 의약품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수법이다.
둘째는 적응증 확대다. 머크는 2014년 이후 12년간 흑색종에서 시작해 폐암, 두경부암, 방광암, 유방암 등 19개 암종으로 키트루다의 사용 범위를 넓혔다. 조사팀은 이 과정에서 일부 적응증의 경우 임상적 이득이 제한적이거나, 현재 표준 용량보다 낮은 용량으로도 동등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머크가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낮은 용량은 곧 낮은 매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27개국에서 1,000건 이상의 공공기록 요청, 수백 건의 인터뷰(종양학자, 암 환자, 특허 전문가, 규제 당국, 제약 업계 내부자), 독점 가격 데이터 및 특허 분석,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업 프레젠테이션·특허위원회 문서·소송 자료·기업·규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이번 ICIJ 조사는 글로벌 의약품 가격 책정 구조에 대한 정책 압박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메디케어(Medicare)의 의약품 가격 협상권 확대, 유럽에서는 공동 보건기술평가(HTA) 도입 등 규제 방향이 이미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 시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키트루다의 핵심 특허가 만료되는 2028년 전후로 복수의 제약사가 펨브롤리주맙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특허 요새가 얼마나 견고한지에 따라 실질적인 경쟁 진입 시점은 수년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보건 당국과 건강보험 재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에도 이번 조사 결과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키트루다는 한국에서도 다수 암종에 급여가 적용되고 있으며, 가격 협상 구조의 투명성 확보 요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조사가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생명을 구하는 약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37개국 언론인들이 함께 파헤친 이 조사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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