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 키트루다, 연간 21만 달러 돌파…트럼프 약가 공약 무색
미 상원 보고서, 면역항암제 줄줄이 인상 확인…비공개 협약 실효성에 의문

- •머크 키트루다 가격이 연간 21만 달러로 올라 트럼프 공약과 정면 배치됐다.
- •미 상원 보고서는 면역항암제 계열 전반의 가격 인상 추세를 공식 확인했다.
- •특허 장벽과 비공개 협약 구조가 실질적 가격 통제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간 21만 달러의 암 치료제
머크(Merck & Co.)의 블록버스터 암 치료제 키트루다(Keytruda)가 미국에서 연간 21만 달러(약 2억 9,000만 원)를 돌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방약 가격 인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집권 기간 중 오히려 6% 인상된 수치다. 미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HELP) 소수당 의원들이 발표한 최신 보고서가 이를 공식 확인했다.
공약과 현실의 간극
트럼프 행정부는 처방약 가격을 낮추겠다는 선언 아래 머크를 포함한 12개 이상의 제약사와 비공개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머크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키트루다는 정작 가격 인하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머크 최고경영자 로버트 M. 데이비스에게 협약의 구체적 내용을 질의하자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머크 수석 부사장 요하나 헤르만은 서면으로 "비밀 협약의 세부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협약이 키트루다 사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장기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협약이 존재하되 키트루다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실상 가격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특허 장벽과 불투명한 가격 구조
ICIJ가 47개 언론사와 공동 진행한 탐사 보도 '캔서 캘큘러스(Cancer Calculus)'에 따르면, 머크는 수십 년간 촘촘한 특허 장벽을 구축해 경쟁을 차단하고 불투명한 가격 체계를 통해 키트루다의 고가를 유지해왔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키트루다를 19종의 종양 치료에 승인했으며,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가격 저항력은 극히 약하다.
ICIJ 분석에 따르면 키트루다 표준 용량(200mg) 1회 투여 비용은 인도네시아에서 약 1,700달러인 반면, 미국에서는 협상 전 기준 약 1만 2,000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일본보다 5배 이상 비싼 가격을 치르고 있다고 상원 보고서는 명시했다. 이 가격 격차는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닌 구조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이다.
가격 인상 문제는 키트루다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요 경쟁 약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의 옵디보(Opdivo)도 트럼프 집권 이후 4% 인상됐고, 존슨앤드존슨(J&J)의 다잘렉스(Darzalex) 역시 6% 올랐다. 면역항암제(immunotherapy) 계열 전반에서 가격 상승세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등장에서 글로벌 가격 논쟁까지
키트루다는 2014년 FDA 승인을 받은 이후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계열의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초기 흑색종 치료에 한정됐던 적응증은 급속도로 확대됐고, 2017년 이후에는 종양의 종류와 무관한 '종양 불문 치료제(tumor-agnostic)'로 승인받으면서 적용 범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격도 꾸준히 우상향해왔다.
약가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정치적 의제로 부상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메디케어의 약가 직접 협상권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키트루다와 같은 특허 보호 기간 내 신약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IRA 틀 밖에서 자발적 비공개 협약 방식을 택했으나, 이번 보고서가 보여주듯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찬반 시각: 혁신 보상 대 접근성 박탈
제약 업계는 고가 정책이 수십 년간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주장한다. 키트루다 개발에는 수십억 달러가 투입됐으며, 회수 기간이 제한된 특허 체계 안에서 가격 인하는 미래 혁신 동력을 꺾는다는 논리다.
반면 환자 단체와 의료계는 미국의 약가가 구조적으로 왜곡돼 있으며, 보험사와의 불투명한 리베이트 거래가 실제 환자 부담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연간 21만 달러'는 표시 가격일 뿐, 실제 보험 급여 여부와 자기 부담금에 따라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탐사 보도에 따르면 보험사의 급여 거부에 맞서 법적 싸움을 벌이는 암 환자 사례가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키트루다의 주요 물질 특허 만료가 2028년 이후로 예정된 가운데,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동등생물의약품)가 시장에 진입해 실질적 경쟁을 형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머크가 피하주사(SC) 제형 전환, 병용 요법 특허 추가 등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바이오시밀러 진입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의회 차원에서는 메디케어(Medicare·연방 노인 의료보험)의 약가 협상 대상을 면역항암제까지 조기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제약 업계의 강력한 로비와 공화당 내 규제 완화 기조를 감안할 때, 실질적 입법이 이뤄지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이번 ICIJ 보고서가 각국 보건 당국의 가격 참조제(reference pricing) 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내 가격이 다른 국가 협상에서 기준점으로 활용될 경우, 머크에 대한 글로벌 압박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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