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가스전 BP 협상, 또 표류…입찰 유효기간 9월로 연장
법적 구속력 이미 만료된 상태에서 석유공사, 기한 6개월 추가 연장…감사원 감사·행정 공백이 발목

- •석유공사가 BP의 동해 가스전 입찰 유효기간을 9월 말로 6개월 연장했다.
- •BP 제안서는 이미 법적 효력이 만료돼 BP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상태다.
- •감사원 감사·행정 공백이 겹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계약은 표류 중, 기한만 늘었다
한국석유공사(KNOC)가 동해 심해 가스전 2차 시추 우선협상대상자인 영국계 글로벌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입찰 유효기간을 당초 3월 말에서 9월 말로 6개월 연장했다고 15일 공식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협상 지속을 위한 행정 절차지만, 실상은 이미 법적 구속력이 소멸된 입찰제안서를 상대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업계에 따르면 BP의 제안서는 입찰 규정상 3월 말 효력이 자동 만료됐다. 이 상태에서 BP는 사실상 조건 변경이나 협상 철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 석유공사가 정식 연장 동의 절차를 밟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아 협상의 법적 기반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왜 이 사업이 중요한가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은 단순한 에너지 개발을 넘어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와 직결된다. 현재 석유공사는 울릉분지 내 7개 해상광구 약 2만 제곱킬로미터에 대해 해외 사업자를 유치해 2차 시추를 추진하고 있다. 외국 기업에는 최대 49%까지 지분 투자가 허용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하는 한국에서 동해 자원 개발은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의제다.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점에 심해 탐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협상이 지연될수록 BP가 다른 사업 기회를 우선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왕고래에서 BP까지: 이 사업의 뿌리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면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는 2024년 동해 심해에서 대규모 가스전 존재 가능성을 발표하며 '에너지 독립'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같은 해 말 1차 탐사 시추 결과 대왕고래 구조는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사업은 사실상 첫 번째 벽에 부딪혔다.
석유공사는 2023년 3월부터 9월까지 해상광구 투자유치 입찰을 진행했고, 복수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 중 엑슨모빌 등과 경쟁한 BP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202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석유공사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사전 협의 없이 BP와의 협상 사실을 언론에 유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경위 조사를 지시했다.
이 사건 이후 산업부 승인이 사실상 멈춰 섰고, 협상은 반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는 산업부 승인이 필수적인 구조다.
설상가상으로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왕고래 시추 실패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가 진행 중이다. 산업부가 2024년 10월 직접 감사원에 청구한 이 감사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후속 절차에 실질적 제동을 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관련 담당자들이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승진과 성과급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 비판도 거세졌다.
앞으로의 전망 [AI 분석]
현 협상 구조에는 세 가지 리스크가 겹쳐 있다. 첫째, 법적 구속력이 사라진 BP가 협상 테이블을 떠날 자유를 가졌다는 점. 둘째, 감사원 감사 결과가 하반기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산업부의 공식 승인 시점 역시 9월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점. 셋째,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조정 사이클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이다.
9월 말이라는 새 기한이 지켜질지 불투명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감사원 결과 발표 전후를 협상의 실질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만약 감사에서 절차적 중대 하자가 확인될 경우, 산업부가 2차 시추 전체 계획을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최근 카자흐스탄·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으로부터 원유·나프타 추가 도입에 나선 것도 이 같은 국내 자원 개발 지연과 무관하지 않다. 에너지 공급 다각화의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협상 지연이 길어질수록 해외 투자자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이 에너지 자립을 향한 장기 전략을 유지하려면, 행정 투명성 회복과 부처 간 협의 체계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댓글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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