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이커리, 맷돌과 화지로 공간을 빚다
슈튜디오 마이클 부르만이 설계한 KEIT 베이커리, 재료의 질감으로 말하는 미니멀리즘

- •베를린 KEIT 베이커리가 재활용 맷돌 카운터를 중심으로 돌·나무·철의 조화를 선보였다.
- •슈튜디오 마이클 부르만은 화지와 더글러스 퍼로 강한 석재를 부드럽게 감싸는 설계를 완성했다.
- •재료의 역사와 질감을 공간 서사로 전환한 미니멀리즘 베이커리 디자인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빵집이 조각 작품이 되는 순간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에 문을 연 KEIT 베이커리는 빵을 파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물성 실험실이다. 슈튜디오 마이클 부르만(Studio Michael Burman)이 설계한 이 인테리어는 돌, 나무, 철이라는 세 가지 재료를 층층이 쌓아 올리며 '빵을 만드는 행위'를 건축적 언어로 번역한다.
공간의 중심은 단연 카운터다. 재활용 맷돌(millstone)을 세 조각으로 잘라 재조합한 이 곡선형 구조물은 방 전체를 가로지르며 고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수백 년의 사용 흔적이 새겨진 돌의 질감은 공간에 시간의 무게를 더하고, 부채꼴로 펼쳐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정제된 움직임의 감각을 불어넣는다.

표면이 곧 이야기다
카운터는 단순한 작업대가 아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연장부가 곡선을 이어받아 수납과 작업 공간을 통합하고, 하단에는 더글러스 퍼(Douglas fir) 원목이 받침대 역할을 하며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각 재료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가까이서 볼수록 구조의 논리가 선명하게 읽힌다.
빵 진열대는 이 대비를 더 극적으로 만든다. 얇은 프로파일의 스테인리스 선반 위에 불규칙한 형태의 빵들이 놓이면서, 기계적 정밀함과 수제의 불완전함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한다. 별도의 장식 없이 재료 자체가 시각적 질서를 만드는 방식이다.
벽면은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손으로 제작한 화지(和紙, washi paper)를 겹겹이 붙인 벽은 빛을 분산시키며 공간의 딱딱한 요소들을 부드럽게 감싼다. 겹친 종이의 미세한 요철은 가까이서는 리듬감으로, 멀리서는 따뜻한 질감으로 인식된다.
카운터 위 길게 뻗은 펜던트 조명 역시 화지로 만들어졌다. 돌과 철 위로 퍼지는 따뜻하고 균일한 빛은 공간의 무게 중심을 낮추며, 작업대 아래서 이루어지는 제빵 행위에 시선을 자연스럽게 돌린다.
일관된 언어가 공간을 하나로 묶다
더글러스 퍼는 카운터 받침에서 멈추지 않는다. 벤치와 소형 선반에도 같은 수종이, 같은 둥근 모서리 처리로 반복 등장한다. 재료와 형태의 반복이 공간 전체에 친숙함을 쌓아 올리고, 각 요소가 중심의 맷돌 카운터를 향해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짙은 브라운 계열 바닥재는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묶는 기반이다. 빛을 흡수하는 어두운 톤이 밝은 벽과 대비를 이루며 중간 높이의 밀도 있는 재료들을 더욱 부각시킨다. 동선은 카운터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고, 공간의 나머지 여백은 막힘 없이 열려 있다.
소재가 철학을 말할 때
디자인 업계 매체 보도에 따르면, KEIT 베이커리 프로젝트는 최근 유럽 소규모 식음료 공간에서 두드러지는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단순히 세련된 외관을 추구하는 데서 나아가, 재료의 출처와 역사를 공간의 서사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재활용 맷돌의 사용은 이 맥락에서 특히 상징적이다. 오랫동안 곡물을 갈았던 돌이 다시 빵을 만드는 공간의 중심으로 돌아온다는 내러티브는, 기능과 형태를 뛰어넘어 장소에 기억을 새긴다. 화지라는 동아시아적 재료가 베를린의 골목 빵집에 등장하는 것 역시, 재료 선택이 지역과 문화를 넘나드는 시대의 감각을 반영한다.
공간 디자인이 브랜딩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한 오늘날, KEIT 베이커리는 최소한의 시각적 언어로 최대한의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사례로 주목받는다.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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