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립박물관 관광객 유료화, 디지털 신분증 없이는 불가
노동당 의원 호지, '흑인 아이에게 외국인이냐 묻는 상황 만들어선 안 돼'

- •호지 의원, 디지털 신분증 없이 관광객 박물관 유료화는 불가 주장.
- •입장료로 걷힐 수입이 최대 1,000만 파운드에 불과해 실효성도 의문.
- •영국 예술 예산은 베를린 단일 도시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
유료화 전에 디지털 신분증부터
영국 잉글랜드 국립박물관의 해외 방문객 입장료 도입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해당 제안의 주창자인 노동당 상원의원 마거릿 호지(Margaret Hodge)가 4월 14일 영국 의회 커뮤니케이션·디지털 특별위원회에서 직접 입장을 밝혔다. 핵심은 단순했다. 디지털 신분증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정착되기 전까지는 유료화를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디지털 신분증인가
호지 의원은 유료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는 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흑인 아이가 입장구에 서 있을 때, 직원이 '당신은 외국인입니까?'라고 묻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통합의 정신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는 보편적 디지털 신분증 체계가 선행돼야 방문객 구분이 가능하며, 이것 없이 도입할 경우 불공정과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신분증은 최근 영국 내에서도 개인정보 보호 우려와 함께 재차 논쟁이 불붙은 주제다.
유료화가 가져올 실익은 '10억원도 안 돼'
호지 의원은 경제적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관광객 입장료 도입으로 걷힐 수 있는 수입이 "1,000만 파운드(약 175억 원)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추산했다. 불공정과 행정 비용을 감안하면 "할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결론이다.
이 발언은 지난해 12월 호지 의원이 발표한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검토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당시 보고서는 새로운 재원 조달 모델부터 시스템 개편까지 폭넓은 개혁안을 담았으며, 그 중 관광객 유료화 제안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문화계의 반발, 그리고 정부의 입장
유료화 제안은 문화계 주요 인사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테이트(Tate) 미술관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마리아 발쇼(Maria Balshaw)는 지난 3월 이렇게 비판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면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공식 응답을 통해 호지 의원의 제안 중 일부를 수용했다. 국가 예술위원회의 존속과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즉 정치적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원칙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기 지원을 받는 국가 포트폴리오 기관(NPO) 모델 개편에도 동의했다.
예술 예산, 유럽 주요 도시에 비해 '초라한 수준'
호지 의원이 위원회에서 지적한 또 하나의 핵심 문제는 예산 규모다. 그는 베를린 한 도시가 예술·문화에 5억 2,500만 파운드(혹은 유로)를 지출하는 반면,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NPO 프로그램 전체 예산은 4억 5,800만 파운드이며, 런던 시장의 문화 예산은 고작 1,870만 파운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예술 지출에 있어 상당히 인색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호지 의원은 민간 기부 활성화를 강력히 지지했다. 그는 "공공 재정 현실상 예술위원회 예산을 두 배로 늘리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런던 외 지역에서도 기부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차등 세액공제 방식의 도입이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개인 기부자에게 66%, 기업에는 60%의 세액공제를 적용한 결과 2004년 예술·문화 분야로 유입된 민간 자금이 10억 유로에 달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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