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6, 도시 전체가 실험실이 되다
런던 V&A 이스트 개관부터 다카르 괴테 인스티투트까지, 문화 공간이 사회적 역할을 재정의하는 한 주

-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6, 도시 전체를 참여형 디자인 실험장으로 전환.
- •런던 V&A 이스트 개관·다카르 괴테 인스티투트 등 문화 기관의 공간적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
- •게티 센터 폐관·내셔널 갤러리 신관 등 대형 기관들의 장기 혁신 전략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
디자인이 도시를 무대로 삼다
2026년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가 올해 '퓨오리살로네(Fuorisalone)' 테마로 "Be the Project"를 내걸었다. 단순한 전시 관람을 넘어 디자인 자체를 개방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실천으로 재정의한 이번 행사는, 브레라(Brera)·토르토나(Tortona)·이솔라(Isola) 등 밀라노 전역의 지구를 아우르는 분산형 플랫폼으로 도시 공간 자체를 살아있는 내러티브로 전환한다. 건축, 소재 연구, 디지털 실천이 교차하는 이 무대에서 밀라노는 단순한 개최지가 아닌 작품 그 자체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인디오(Indio) 사막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25회 또한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퍼블릭 아트 컴퍼니(Public Art Company)가 기획한 대형 설치 작품들은 빛과 투명성, 감각적 몰입을 통해 사막 경관 속에서 조각적 랜드마크이자 인간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사빈 마르셀리스(Sabine Marcelis), 키리아코스 차치파라스케바스(Kyriakos Chatziparaskevas), LADG의 신작과 함께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 에도아르도 트레솔디(Edoardo Tresoldi) 등 기존 작가들의 귀환작이 페스티벌의 건축·예술·자연 간 대화를 이어간다.

기관들의 공간적 진화, 그 의미
이번 주 가장 주목할 제도적 사건은 런던 V&A 이스트 뮤지엄(V&A East Museum)의 개관이다. 4월 18일 문을 연 이 건물은 오도넬 + 토미(O'Donnell + Tuomey)가 설계했으며, 수직으로 연결된 갤러리와 학습 공간, 공공 영역을 조각된 콘크리트 파사드로 감싼 구조다. V&A의 제도적 존재를 이스트 런던으로 확장하면서 접근성과 글로벌 창작 실천, 지역 공동체 참여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프리카에서는 케레 아키텍처(Kéré Architecture)가 설계한 세네갈 다카르(Dakar)의 괴테 인스티투트(Goethe-Institut)가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목적 건축 괴테 인스티투트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중앙의 바오밥 나무를 중심으로 배치되고 현지 조달 라테라이트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서아프리카와 독일 간 문화 교류의 장기적 인프라로 기능하며, 케레의 생기후적·재료 중심적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게티 센터(Getty Center)가 1997년 개관 이래 가장 대규모인 현대화 공사를 앞두고 있다. 2027년부터 2028년까지 일시 폐관하여 접근성 개선, 환경 성능 강화, 갤러리 재구성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파빌리온 기반 캠퍼스 정체성과 빛·조경과의 통합은 유지된다. 런던에서는 겐고 쿠마 앤드 어소시에이츠(Kengo Kuma & Associates)가 '프로젝트 도마니(Project Domani)' 공모에서 내셔널 갤러리 신관 설계자로 선정되어, 포틀랜드 스톤 계단형 매싱으로 트라팔가 광장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새 갤러리 동과 시민 공간, 조경 옥상을 구현할 계획이다.
이 흐름은 언제부터였나
문화 기관이 공간적 역할을 재정의하는 흐름은 2000년대 초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 논쟁과 함께 본격화됐다. 구겐하임 빌바오의 성공 이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랜드마크 문화 시설을 도시 재생의 엔진으로 삼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증축,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 개관 등 제도권 미술관의 지리적 확장이 가속화됐다.
2020년대 들어서는 팬데믹 이후 공공성과 접근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기관들의 건축적 전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스타 아키텍처(Starchitecture)보다는 지역 소재와 기후 반응형 설계, 지역 공동체와의 통합이 우선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케레의 다카르 괴테 인스티투트가 바오밥 나무를 중심으로, 라테라이트 벽돌로 지어진 것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역시 팬데믹 이후 급격히 변모했다. 슈퍼스튜디오(Supersalone) 형식으로 압축·실험됐던 2021년 이후, 행사는 점점 더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삼는 분산형 플랫폼으로 진화해 왔다. "Be the Project"라는 올해 테마는 그 연장선상에서 디자이너뿐 아니라 시민과 방문객 모두를 창작 주체로 호명한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이번 주 부각된 프로젝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방향성을 가리킨다. 문화 기관과 디자인 이벤트 모두가 '경험'과 '참여'를 핵심 가치로 재정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V&A 이스트의 이스트 런던 이전은 런던 내 문화적 지리의 재편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으로 서런던 중심이었던 주요 문화 기관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지역 젠트리피케이션과 접근성 확대 사이의 긴장이 새로운 도시 담론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게티 센터의 2027~2028년 폐관은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닌 세대 교체적 의미를 지닐 가능성이 높다. 1997년 개관 당시의 건축적 이상이 약 30년 만에 현실의 접근성·환경 기준에 맞춰 재조정되는 과정은, 다른 주요 미술관들에게도 자체 시설 점검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문화 인프라 투자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카르 괴테 인스티투트 사례는 글로벌 문화 기관들이 아프리카를 수혜 대상이 아닌 창작 파트너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으며, 향후 유사한 복수의 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참여형 전환은 디자인 산업 전반의 탈상품화 실험과 맞닿아 있다. 과정을 공개하고 관람객을 공동 창작자로 초대하는 방식이 다른 글로벌 디자인 행사들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전시와 이벤트의 형식 자체를 장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댓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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