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후보가 전쟁 대통령이 되는 나라, 미국 외교의 딜레마
이스라엘 무기 판매 차단 결의 부결 속 민주당 내 반전 표결 역대 최다

- •샌더스의 이스라엘 무기 판매 차단 결의가 부결됐지만 민주당 반대표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 군사주의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 •전문가들은 군산복합체에 포획된 외교정책 구조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에 폭탄을 막으려 했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스라엘에 대한 폭탄과 불도저 판매를 차단하는 결의안 표결을 주도했다. 결의안은 대부분 당파적 구도 속에서 부결됐다. 1,000파운드(약 450kg)급 폭탄 판매 차단 결의에는 민주당 11명이 공화당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고, 군사 점령에 사용되는 불도저 판매 차단 결의에는 7명이 반대했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결의의 부결이 아니다. 이번 표결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에 반대한 민주당 의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회의감이 서서히 임계점에 다가서고 있다는 신호다.
당 지도부와 민심의 괴리
샌더스의 전 외교정책 보좌관 매트 더스(Matt Duss)는 "민주당 지지층의 절대 다수가 이 전쟁에 반대하고,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 개입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은 무기 판매 차단 결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더스는 "민주당 지도부는 여전히 미국의 전 세계 군사 패권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매파 세력의 일부"라면서 "다행히 이 세력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번 표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경 군사 모험주의가 전면에 드러난 시기에 이뤄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이 한 달을 넘어섰고, 현재는 불안한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카프카적 아이러니
미국-이란 갈등의 최전선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쟁 발발 후 이란이 이 해협을 봉쇄하자 미국은 해협 개방을 전쟁 목표 중 하나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란이 특정 조건 하에 해협 개방에 동의했음에도 미국이 조건을 거부하면서, 이제는 미국 자체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역설적 상황이 됐다.
관련 취재에 따르면, "미국이 불명확한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고, 이란이 해협을 닫자 해협 개방을 목표로 삼더니 이제 미국 스스로 해협을 막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진 채 휴전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군사주의의 긴 그림자
더스는 이 사태를 단순히 이스라엘이나 트럼프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에 경계를 표했다.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 탓으로만 돌리면 워싱턴의 책임이 면제된다"며 "미국의 외교정책 집단은 군사주의에 중독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자금을 받는 싱크탱크들, 무기 제조업체의 후원을 받는 정치 계층이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유지를 거의 종교적인 수준으로 신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2000년대 이후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드론을 이용한 암살 작전을 반복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마약 밀수 혐의자에 대한 선박 공격까지 승인하며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됐다. "이란 전쟁은 오랫동안 쌓여온 외교정책 경향의 가장 극단적이고 끔찍한 표현"이라는 것이 더스의 진단이다.
역사적으로 반전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후보들이 막상 집권하면 전쟁 대통령이 되는 패턴도 반복돼 왔다. 버락 오바마는 반전 정서를 업고 당선됐지만 임기 내 드론 공습을 크게 확대했다. 트럼프 역시 2016년 선거에서 "끝없는 전쟁(endless wars)"에 반대한다고 공언했지만, 지금은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더스는 지금이 미국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이 메시지에 공감하는 진짜 지지층이 있다"면서 "전쟁이 아닌 평화 구축에 기반하고, 미국 지역사회와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면서도 세계에 불안과 빈곤을 수출하지 않는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반전 움직임이 역대 최다 표결로 가시화된 만큼,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반전·비개입주의 외교 의제가 민주당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슈머 등 당 지도부가 여전히 전통적인 친이스라엘·강경 외교 노선을 유지하고 있어, 당내 노선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더욱 복잡한 변수다.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국제 원유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고 세계 경제에 파급 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높다. 더스가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 — 미국의 군사주의 중독을 끊을 수 있는가 — 은 한 번의 표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역대 최다 민주당 반전 표결은 그 변화의 씨앗이 이미 뿌려졌음을 시사한다.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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