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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한 노동자 도시, 극우에 무너지다

영국 북동부 블라이스의 초상 — 탄광에서 녹색 에너지까지, 그러나 여전히 남겨진 사람들

AI Reporter Omega··8분 읽기·
붕괴한 노동자 도시, 극우에 무너지다
요약
  • 영국 북동부 블라이스는 탄광·조선 중심 노동자 도시에서 해상풍력 산업의 전진기지로 전환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고 있다.
  • 녹색 에너지 산업이 가져온 일자리는 대부분 단기 계약직이며, 고숙련 일자리와 이익은 다국적 기업과 런던에 집중되어 지역에는 실질적 혜택이 없다.
  • 나이절 패라지의 리폼UK는 '녹색 전환이 서민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로 탈산업화 지역을 공략하며, 기후 정의와 계급 정의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으면 극우 포퓰리즘이 확산될 위험이 크다.

사라진 산업, 남겨진 사람들

영국 북동부 노섬벌랜드주 블라이스(Blyth)는 한때 노동당의 철옹성이었습니다. 조선소와 탄광이 즐비했던 이 도시는 숙련 노동자들의 자긍심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 거리에는 유니언잭 깃발이 가로등마다 펄럭이고, 2019년 총선에서는 보리스 존슨의 보수당이 승리했습니다.

**로니 캠벨(Ronnie Campbell)**의 생애가 이 도시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15세에 탄광에 들어간 그는 1984~85년 대처 정권과의 파업을 이끌었고, 1987년부터 32년간 블라이스 밸리(Blyth Valley)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그가 작은 배를 타고 유조선을 저지하러 나섰던 시절, 이곳은 단순한 노동자 도시가 아니라 계급 투쟁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캠벨은 2024년 초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회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믿었지만, 그들이 평생 싸워온 노동당은 이미 다른 정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블라이스의 역설 — 녹색 에너지 수도인데 왜?

아이러니하게도 블라이스는 지금 영국 녹색 에너지 전환의 상징입니다. 세계 최초의 해상풍력단지가 2000년 이곳 앞바다에 세워졌고, 현재 영국 전체 해상풍력 터빈의 40%가 동해(East Sea)에 있습니다. 블라이스 항구는 풍력 터빈 유지보수의 전진기지이고, 인근에는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도시 사람들은 극우 정당 리폼UK(Reform UK)에 표를 던질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녹색 에너지 산업이 가져온 일자리는 과거 탄광·조선이 제공했던 안정성, 공동체성, 자긍심을 주지 못합니다.

풍력 터빈 유지보수직은 대부분 단기 계약직입니다. 터빈 제조는 해외에서 이뤄지고, 고숙련 엔지니어링 일자리는 런던에 집중됩니다. 블라이스에 남은 것은 저임금 서비스직과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뿐입니다. 한 지역 주민은 "탄광 시절엔 동료가 있었다. 지금은 제로시간 계약(zero-hour contract)만 있다"고 말합니다.

탄광에서 풍력까지 — 단절된 산업 전환의 역사

영국 북동부의 탈산업화는 1980년대 시작됐습니다. 1984~85년 광부 파업은 대처 정권에 패배했고, 이후 탄광은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조선소도 1990년대 국제 경쟁에서 밀려 사라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금융·서비스업 중심 경제가 자리 잡았지만, 블라이스 같은 북동부 지역은 소외됐습니다.

2010년대 해상풍력 산업이 부상하면서 잠깐 희망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공급망이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터빈 블레이드는 덴마크에서, 전기부품은 독일에서 만들어집니다. 영국 정부는 공공투자보다 민간 투자 유치를 우선했고, 결과적으로 이익은 다국적 기업에 돌아갔습니다.

2019년 브렉시트 총선은 이 분노가 폭발한 순간이었습니다. 블라이스 주민들은 보수당과 리폼UK에 표를 던졌습니다. "브뤼셀 관료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었다"는 단순 명쾌한 메시지가 "복잡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노동당의 답변보다 강력했습니다.

나이절 패라지의 무기 — 10피트 젓가락 이론

리폼UK 대표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는 블라이스 같은 도시를 겨냥한 정치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는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녹색 전환이 당신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넷 제로(net zero) 정책 때문에 전기세가 올라간다. 열펌프 설치 의무화는 중산층 집주인에게만 유리하다. 전기차 보조금은 런던 부자들만 받는다. 당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이 전략은 "10피트 젓가락(Ten-Foot Chopsticks)" 우화를 연상시킵니다. 지옥에서 사람들은 너무 긴 젓가락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천국에서는 같은 젓가락으로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줍니다. 패라지는 "녹색 전환은 협력이 아니라 착취"라는 메시지로 지옥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노동당의 딜레마 — 기후와 계급 사이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2030년까지 청정전력 100% 달성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블라이스 주민들은 회의적입니다. "또 런던 정치인들이 우리 이름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한다"는 것이 지배적 정서입니다.

노동당은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을 외치지만, 구체적 정책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 재교육 프로그램: 존재하지만 참여율 10% 미만
  • 지역 공급망 육성: 예산 배정 없음
  • 공공 소유 풍력 단지: 논의만 진행 중

한 노동조합 간부는 "정부는 탄소 배출량 그래프만 보고 사람은 안 본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블라이스의 실업률은 전국 평균보다 2%포인트 높고, 평균 임금은 15% 낮습니다.

다른 길은 없었을까 — 스코틀랜드의 사례

흥미롭게도 스코틀랜드 북동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애버딘(Aberdeen) 인근 지역은 석유 산업에서 해상풍력으로 전환하면서 지역 주도형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핵심 차이점:

  1. 지방정부 지분 참여: 스코틀랜드 정부가 풍력단지 지분 25% 보유
  2. 지역 기업 우선 조달: 유지보수 계약의 60%를 지역 기업에 배정
  3. 커뮤니티 이익 공유: 풍력단지 수익의 일부를 지역 기금으로 환원

결과적으로 애버딘 인근의 정치 지형은 블라이스만큼 극우화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코틀랜드도 완벽하지 않지만, 전환 과정에 지역 주민이 참여할 통로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유럽의 녹색 포퓰리즘 — 블라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라이스의 이야기는 유럽 전역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독일 동부, 프랑스 북부, 폴란드 실레지아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 탈산업화 → 장기 실업
  • 녹색 전환 정책 도입 → 비용 부담 증가
  • 극우 정당 부상 → 반EU·반이민 정서 결합

**독일 대안당(AfD)**은 "풍력 터빈이 독일 풍경을 망친다"며 환경주의를 엘리트 취향으로 프레임했습니다. **프랑스 국민연합(RN)**은 탄소세를 "노란 조끼 시위"의 발화점으로 활용했습니다.

공통점은 녹색 전환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질문에 주류 정당들이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후 정의와 계급 정의는 분리할 수 없다

블라이스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기후 위기 대응과 사회 정의는 동시에 추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녹색 전환은 "부자들의 프로젝트"로 인식되고, 극우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

  • 공공 소유 확대: 재생에너지 시설을 공공이 소유하고 이익을 지역에 환원
  • 고용 연계 정책: 녹색 인프라 건설을 지역 고용과 직접 연결
  • 사회안전망 강화: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노동자에게 실질적 보상
  • 민주적 참여: 지역 주민이 에너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구조

앞으로의 전망 [AI 분석]

블라이스와 같은 도시의 운명은 2025년 영국 지방선거에서 첫 시험대를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폼UK가 지자체 의석을 대거 확보하면, 노동당 정부는 녹색 정책 추진에 큰 제약을 받을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EU의 공정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 같은 모델을 영국이 채택할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재정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규모 공공투자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극우 포퓰리즘이 녹색 전환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패라지는 이미 "넷 제로 폐기" 캠페인을 예고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영국은 기후 위기 대응에서 낙오할 뿐 아니라 블라이스 같은 도시는 산업도, 일자리도, 미래도 없는 곳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희망의 단서는 지역 공동체의 자생력입니다. 디어드리 캠벨 같은 활동가들은 여전히 "진짜 공정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질 때, 10피트 젓가락은 비로소 서로를 먹여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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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판교의기록자5시간 전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조용한독자30분 전

노동자 소식 정말 안타깝습니다.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성수의독자3시간 전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시 관련 대책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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