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DeFi 구조조정, 붕괴인가 정화인가

TVL 40% 급락과 프로토콜 잇따른 폐쇄… 약세장이 드러낸 탈중앙금융의 민낯

·4분 읽기
DeFi 구조조정, 붕괴인가 정화인가
요약
  • ZeroLend 등 DeFi 프로토콜 줄폐쇄, TVL 약 40% 급락.
  • 스테이블코인 3,000억 달러 돌파·기관 투자 지속으로 붕괴 아닌 재편 신호.
  • 보안·거버넌스·규제 미해결 과제가 DeFi 구조 성숙의 핵심 변수.

ZeroLend의 퇴장, 업계에 던진 경고

탈중앙화 금융(DeFi) 대출 프로토콜 ZeroLend가 올해 2월 운영 3년 만에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운영진이 밝힌 이유는 박한 수익률, 해킹 피해, 비활성 체인의 삼중고였다. 시장은 이 발표를 이미 익숙한 어조로 받아들였다. 초기 낙관론이 거스를 수 없는 냉혹한 현실로 전환된 시대의 단면이라는 것이다.

ZeroLend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부터 2026년 초 사이 다수의 DeFi 프로토콜과 인접 크립토 플랫폼이 줄지어 운영을 중단했다. 저조한 사용률, 유동성 붕괴, 보안 사고, 그리고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을 구축하지 못한 토큰 기반 수익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파생상품 프로토콜 Polynomial의 경우 2,700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고도 최근 운영을 일시 중단했으며, 사용자 자금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두면서 동일 팀 체제로 재출범을 준비 중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것: 붕괴가 아닌 순환

냉각의 징후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DeFi의 핵심 지표로 통용되는 총예치자산(TVL)은 2025년 10월 약 1,670억 달러(약 240조 원) 정점에서 올해 2월 초 약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40% 가까이 증발한 셈이다.

그러나 TVL 단일 지표만으로 구조적 건전성을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오히려 계속 팽창해 최근 3,000억 달러(약 432조 원)를 돌파했다.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서 이탈한 유동성이 실질적 효용을 제공하는 저변동 인프라로 재배치되고 있다는 신호다. 기관 자금의 움직임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아폴로(ollo)가 급성장 중인 대출 프로토콜 Morpho에 투자를 집행했다.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운용사가 구조적으로 붕괴된다고 판단한 인프라에 자금을 투입하지는 않는다.

DeFi가 아직 풀지 못한 세 가지 과제

ZeroLend의 폐쇄는 동시에 DeFi 현 단계의 미해결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첫째, 보안 위험은 구조적이다. DeFi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자본 흐름을 지배하는 구조다. 감사(audit)가 노출을 줄이지만 제거하지는 못한다. 정교한 익스플로잇은 수년 간 쌓인 신뢰를 수 분 만에 붕괴시킬 수 있다. 자본이 프로그래매틱으로 접근 가능한 구조 자체가 DeFi를 공격자에게 매력적인 표적으로 만든다. 다만 모든 프로토콜이 동일하게 취약한 것은 아니다. Aave와 Morpho처럼 긴 운영 이력, 복수 감사, 깊은 유동성, 기관 후원자를 보유한 플랫폼은 차별화된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둘째, 거버넌스 딜레마가 여전히 미성숙하다. 탈중앙화는 권력을 분산시키지만 집중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거버넌스 토큰은 커뮤니티 투표를 가능하게 하지만, 대규모 보유자가 담보 매개변수나 인센티브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용자는 시장 위험에 더해 거버넌스 위험까지 부담한다.

셋째, 규제 공백이 최대 변수다. 유럽연합의 가상자산 시장 규제(MiCA)가 크립토 자산 전반에 명확성을 도입했지만, DeFi는 여전히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미국에서는 정치 사이클에 따라 규제 기조가 오락가락한다. 자율 코드로 운영되는 탈중앙화 프로토콜에 KYC 의무를 부과하려는 시도는 현실적 난제에 부딪힌다. 누가 자율 시스템에서 컴플라이언스를 수행하는가?

DeFi의 긴 사이클: 버블에서 검증으로

2020년 이른바 'DeFi 여름'은 유동성 채굴 인센티브로 수조 원의 자금을 단기간에 빨아들이며 업계 전체를 들썩였다. 그러나 토큰 보상 감소와 함께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2022년 루나·테라 붕괴와 X 사태는 시장 전반의 신뢰를 흔들었다. 2023~2024년 회복 사이클에서 살아남은 프로토콜들은 실제 수익 모델과 기관 수용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2025~2026년 현재의 위축은 이 긴 정화 과정의 연장선이다. 약세장은 모든 자산군에서 투기 수요를 수축시키고, 유동성을 얇게 만들며, 취약한 구조를 노출한다. 약한 모델은 무너지고 강한 모델은 통합된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와 기관급 대출 프로토콜은 이미 그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양상이다. 규제 명확성이 확보되는 시점이 DeFi 2.0의 실질적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타이밍은 미국과 유럽의 규제 당국 행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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