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부셔', '테로', '자대'… 점점 멀어지는 남북한의 언어
김정은 시정연설에서 드러난 남북 언어 차이, 적대 기조 속 말의 거리도 벌어져

- •김정은 시정연설에서 '짓부셔', '테로' 등 한국과 다른 북한말이 다수 등장했다
- •사이시옷 미사용, 외래어 표기법 차이 등 남북 언어 이질화율은 약 30%에 달한다
- •적대 기조 지속 시 남북 언어 통합 노력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김정은 연설문에 담긴 '낯선 우리말'
지난 3월 2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며 철저히 배척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연설문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메시지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쓰는 한국어와 상당히 다른 북한말의 모습이다.
같은 뜻, 다른 표현
연설문에는 "온갖 반공화국 도발 책동을 '짓부셔버리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같은 의미로 '짓부수어버리기' 또는 '짓부숴버리기'를 사용한다. 북한에서 쓰는 '부시다'는 한국어에서 '눈이 부시다'나 '그릇을 부시다(깨끗하게 씻다)'처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단어다. '마구', '몹시', '함부로'를 뜻하는 접두사 '짓-'과 결합하기에는 의미상 어울리지 않는다.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려나갈 것"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벌여나갈 것'이라고 해야 올바르다. '벌리다'는 팔이나 다리처럼 신체 부위를 넓히는 데 쓰고, '벌이다'는 일이나 행위를 시작하거나 진행할 때 사용한다. 이는 '늘이다'와 '늘리다'를 남북이 서로 바꿔 쓰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외래어 표기와 사이시옷의 간극
외래어 표기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연설문에 등장한 '국가테로'는 한국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국가테러(terror)'로 써야 한다. 북한에서는 '테로망', '테로분자'라고 표기하지만, 한국에서는 '테러망', '테러분자'로 쓴다.
사이시옷 규정에서도 남북의 언어는 갈라진다. 국문법에서도 복잡한 적용 규정으로 악명 높은 사이시옷을 북한에서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잣대'라고 쓰는 단어가 북한에서는 '자대'가 된다. 연설문에도 "지난 시기의 낡은 기준, 낡은 자대에 맞추어졌던 외교관행"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쓰였다.

분단 80년, 언어도 분단되다
1945년 분단 이후 남북한은 각기 다른 언어 정책을 펼쳐왔다. 북한은 1966년 '문화어 운동'을 통해 평양말을 표준으로 삼고 한자어와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대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한국은 서울말을 기반으로 한 표준어를 유지하면서 외래어를 적극 수용해왔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현재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율은 약 30% 수준에 달한다. 일상용어보다 전문용어와 신조어에서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 컴퓨터를 북한에서는 '전자계산기'로,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로 부르는 식이다.
적대 기조가 만드는 언어의 벽 [AI 분석]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이번 연설은 남북 언어 통합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 사업이 재개되는 등 언어 통합 노력이 이어졌으나, 현재의 적대 기조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언어학자들은 남북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될 경우 통일 이후에도 세대 간, 지역 간 소통 장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치적 분단이 언어적 분단으로 고착화되는 현상은 결국 같은 민족 간의 심리적 거리까지 벌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북한 연설문 속 낯선 우리말은 단순한 언어 차이를 넘어, 분단의 깊이를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댓글 (4)
짓부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후속 기사 부탁드립니다.
기사 잘 봤습니다. 다른 시각의 분석도 읽어보고 싶네요.
자대 관련 기사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정보네요.
공감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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