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백신은 없다, 그러나 식물 과학은 진화 중
'식용 백신' 논란의 실체와 식물 유래 백신 연구의 현주소

- •FDA 승인 식용 백신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시장 유통도 없다.
- •1990년대부터 시작된 식용 백신 연구는 투여량 조절 한계로 사실상 중단됐다.
- •식물 유래 단백질을 활용한 주사용 백신 연구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상추가 당신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2024년 미국 테네시주 의회 영상이 재확산됐다. 의원들이 '식용 백신'이 포함된 식품을 규제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상과 함께 퍼진 주장들은 마치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상추나 토마토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는 공포를 심어줬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식용 백신'은 현재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이 논란이 중요한가
백신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시대에, 근거 없는 공포는 실질적인 보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테네시주가 2024년 통과시킨 법률은 백신이 첨가된 식품을 '의약품'으로 분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식품은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 법은 현실에 없는 것을 규제하는 법이다.
미국 연방 식품·의약·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은 사전 규제 승인 없이 의약품이나 생물학적 제제를 식품에 첨가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설령 미래에 음식을 통한 백신 전달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해도, 기존 백신과 동일한 FDA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문제는 이 법적 현실이 소셜미디어의 공포 서사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식용 백신' 논쟁은 과학적 사실보다 불안을 먹고 자란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실험의 역사
'식용 백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는 아니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인물은 애리조나주립대학교 명예교수 찰스 아른첸(Charles Arntzen)으로, 그는 1990년대부터 식물 생물학을 활용해 백신을 만드는 연구를 선도했다.
당시 과학자들의 꿈은 분명했다. 값비싼 제조 공정과 콜드체인(냉장 유통망) 없이도 전 세계, 특히 빈곤 지역에 백신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 주사를 놓을 훈련된 의료인도 필요 없는 방식이었다.
1998년에는 실제 인간 대상 실험도 이뤄졌다. 연구진은 대장균(E. coli)에 대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도록 유전자 변형된 생감자 조각을 피험자들에게 먹게 했고, 실제로 면역 반응이 나타났다. 이후 몇 차례 더 인체 임상이 진행됐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동물 실험 단계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개념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생화학자 헨리 다니엘(Henry Daniell)은 "신선한 상추 잎이나 토마토에서 백신 투여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코넬대학교 미생물학자 캐슬린 헤퍼론(Kathleen Hefferon)도 "토마토 한쪽엔 항원이 많고 다른 쪽엔 거의 없을 수 있다. 햇빛이 어떻게 내리쬐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른첸 교수 본인도 현재 식용 백신을 개발 중인 곳은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전망 [전문가 분석]
식용 백신의 꿈은 사그라들었지만, 그 기저에 있는 식물 과학은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식물 세포를 주사용 백신의 단백질을 생산하는 '미세 농장'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식물 유래(plant-derived) 백신'이다. 식용이 아닌,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 제조 방식보다 비용 효율적이고 빠른 생산이 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식물 유래 기술을 활용한 일부 백신 및 치료제가 임상 단계에 진입했으며, 장기적으로 백신 공급망의 다변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잘못된 정보의 확산은 이 분야 연구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식탁 위의 몰래 접종'이라는 음모론이 퍼질수록, 실질적인 공중보건 혜택을 가져올 수 있는 식물 기반 과학 연구가 정치적 표적이 될 위험도 함께 커진다.
결국 식물이 백신을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백신은 슈퍼마켓 진열대가 아닌, 연구실에서 태어난다.
댓글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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