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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수로의 기억, 현대 건축으로 소환되다

쓰촨성 중장현에 들어선 인민거 수리문화 기념관의 건축 언어

·4분 읽기
한나라 수로의 기억, 현대 건축으로 소환되다
요약
  • 쓰촨성 중장현 산업단지 부지에 인민거 수리문화 기념관이 들어섰다.
  • 한나라 두장옌 수계에서 유래한 인민거의 2000년 역사를 건축으로 재현했다.
  • AOMOMO 스튜디오는 산업 유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 건축 언어와 겹쳤다.

산업 폐허 위에 세워진 문화의 집

중국 쓰촨성 더양시 중장현(中江縣). 과거 청더 산업단지가 들어섰던 자리에 낯선 건물 하나가 솟아올랐다. 인민거(人民渠) 수리문화 중장 기념관이다. 더양시 카이저우 신도시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한(漢)나라 시대부터 이어진 수리(水利) 문명의 기억을 건축적으로 재현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안고 있다.

설계는 AOMOMO 스튜디오와 상하이자오퉁대학(上海交通大學) 연구팀이 맡았다. 두 주체는 산업 유산이 남긴 흔적과 수천 년 치수(治水) 문화의 층위를 어떻게 하나의 건물 안에 녹여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왜 '물'인가 — 인민거가 지닌 의미

인민거는 쓰촨 분지 서부를 가로지르는 대형 관개 수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초기인 1950년대에 대규모로 정비·확장되었지만, 그 뿌리는 한나라 시대 두장옌(都江堰) 수리 체계와 맞닿아 있다. 이 수로가 공급하는 농업용수는 더양·몐양 일대 수백만 명의 식량 기반을 뒷받침해왔다.

물은 이 지역 정체성의 근간이다. 수리 시설의 관리·유지는 단순한 토목 사업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였다. 기념관은 이 역사적 사실을 현대 언어로 번역해, 방문자가 물의 흐름과 인간 문명의 교차점을 몸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한나라에서 신도시까지 — 2000년의 물길

인민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두장옌 수리 시스템과 만난다. 기원전 256년 진(秦)나라 시대 이빙(李冰) 부자가 조성한 두장옌은 댐 없이 수압과 지형만으로 물길을 조절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공학적 성취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시스템은 지금도 쓰촨 평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인민거는 그 파생 수계(水系) 중 하나다. 1950년대 사회주의 국가 건설기에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확장된 이 수로는 '인민의 힘으로 만든 물길'이라는 이름처럼, 집단 노동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수십 년이 흐르며 산업화의 파고가 밀려왔다. 중장현 일대에도 제조업 단지가 들어섰고, 치수 유산은 점차 일상에서 지워졌다. 더양시가 카이저우 신도시를 기획하면서 이 기억의 공백을 메울 문화 앵커 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다.

카이저우 신도시는 더양시가 구상하는 동부 개발 벨트의 핵심 거점이다. 화이저우, 젠저우, 공항 신도시에 이어 룽취안산(龍泉山) 동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산업·문화 클러스터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축이 선택한 방식 [전문가 분석]

AOMOMO 스튜디오의 접근법은 '지우기'보다 '겹치기'에 가깝다. 산업단지의 구조적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는 대신, 기존 지형과 건물 배치의 논리를 새로운 동선 설계에 흡수했다. 이는 중국 건축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네거티브 스페이스 활용'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물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건축적 장치는 기념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다. 수로의 단면, 수압의 원리, 계절별 수위 변화를 각각 다른 전시 공간의 공간적 높이와 빛의 투과율로 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자는 진입부터 퇴장까지 물의 흐름을 은유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상하이자오퉁대학 연구팀의 참여는 학술 기반의 역사 고증을 설계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고학적 수리 데이터와 지역 민속 기록이 전시 콘텐츠 구성에 활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 유산을 문화 시설로 전환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런던 테이트 모던, 베이징 798 예술구 등이 선례를 만들었고, 중국 지방 도시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중장 기념관은 수리 문화라는 비교적 덜 다루어진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흐름 안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더양시의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될수록, 이 기념관이 도시 정체성의 문화적 앵커로 기능할 수 있을지가 향후 주목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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